create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관리자access_time 2018.08.02 17:20visibility 302
의대에 입학하기 전부터 내 로망은 의료봉사였다. 의사가 꿈인 나에게, 의사라는 직업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져 보이는 일이었기 떄문이다. 그래서 동아리도 의료봉사를 할 수 있는 동아리를 선택해서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내 로망과는 다르게,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잡일 뿐 이었고, 의학과에 진급해서 알게 된 의료봉사의 현실은 좋지 않았다. 국내엔 무의촌이 없을뿐더러, 환자들도 다 자신의 질환을 알고 있고 이미 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가서 해주는 것이라고는 약물의 오남용과 수액 주는 것 뿐 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의료가 부족한 곳에서, 그것도 해외에서 하는 의료봉사라니! 평소 귀가 좋지 않아서 비행기 타는 것을 싫어하는 내가 비행기를 네 번 타게 되어도 좋을 만큼 좋았다. 같이 가게 된 사람들도 정말 좋았고, 현지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것도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지에 도착하자 내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4일 동안 있게 된 병원은 병원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위생적이고, 마땅한 의료 기계도 없고, 전기 끊기는 것이 일상적인 공간이었다. 이런 상황에도 오는 환자들은 정말 많았고, 내가 교과서에서만 봤던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계속해서 찾아왔다.
4일 동안 소아과, 안과, 약국, 외과에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소아 환자들을 볼 때 였다. 찾아오는 어린 환자들은 비타민이라도 하나 더 챙겨주고 싶을 만큼 정말 귀여웠다. 똘망똘망한 눈에 경계심이 담긴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조차 예뻤다. 하지만, 그만큼 더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VSD와 PDA가 있는 소아 환자를 다른 방법이 없어 그냥 보낸 것, 백내장이 있는 영아 환자를 그냥 보낸 것, 눈꺼풀에 염증이 난 소아 환자를 그냥 보낸 것 모두 다 지금까지 생각날 만큼 너무 마음이 아팠다. 우리나라였다면 조기에 치료를 해서 이만큼 더 아프지는 않았을 환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팔에 이상이 생긴 소아 환자는 현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정말 마음이 놓였다.
안과에서 있을 때의 기억도 많이 남는다. 안과에서 교수님을 도와드리기 하루 전, 내 자신이 렌즈를 끼다가 각막을 다쳤기 때문에 앞이 보인다는 것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도 싶다. 안과에 찾아오는 환자들은 생각보다 백내장 환자가 많았고, 무엇보다 단순히 안경으로 시력 교정만 하면 되는 환자가 많았다는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미얀마에서는 안경이 약 4만짯으로, 한국 돈으로 4만원 정도 되는데 미얀마 가정의 1/4 정도의 수입이라고 했다. 그래서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쓰거나, 아예 안경을 맞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안경을 맞춰주는 봉사활동도 정말 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면서, 4일 간 의료봉사를 하면서 거의 2000명이나 되는 환자들을 보면서도 최대한 한 명이라도 더 보려고 하셨던 의사 선생님들이 정말 멋있고 존경스러웠다. 물론 앞으로 몇 년 동안은 pk와 인턴, 레지던트를 해야 하기 때문에 참여하기 어렵겠지만, 전문의가 되고 나서는 꼭 다시 참여해서 환자들을 도와주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