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e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관리자access_time 2017.05.15 20:26visibility 188
지난 학기 소화기, 순환기, 호흡기의 내과 과목을 배우면서 각 분과별로 해부학 수업도 다시 들었다. 분명 예과 2학년 때 배웠던 내용인데도 새로웠고, 예과 해부 실습 때는 잘 몰라서 찾지 못했던 구조물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한 번 더 해부를 해보고 싶었지만 우리 학교 시스템상 본과생이 다시 해부를 하는 것은 힘들었다. 그러던 중 일본 큐슈 의대에서 하는 해부 실습 교환학생을 모집한다는 공지를 보고 지원을 하게 되었다. 내가 궁금했던 해부학적 지식을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일 뿐 만 아니라 의학 선진국인 일본의 의료 환경을 접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2주 동안 큐슈에서 지내면서 나는 기대 이상으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일본 의대생들이 얼마나 주체적이고 깊게 해부학을 공부하는지 보면서 반성을 많이 했고, 의대 연구실을 둘러보면서 일본 의학이 왜 발달했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친구들과 같이 여행도 다니고 일본 친구들이 준비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문화적인 교류도 많이 했다.
우선 일본의 해부학 수업은 우리와 사뭇 달랐다. 해부를 시작하기 전에 매번 한조씩 오늘 할 해부에 대해 피피티를 만들어서 발표를 했다. 예습용이기 때문에 많은 내용을 담는다기 보다는 그 조 조원들이 간단하게 오늘 할 해부를 소개하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나면 교수님이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고 임상 의사 선생님께서 임상의학과 연관 지어서 질병을 소개하거나 수술하는 동영상을 보여주기도 하셨다. 이렇게 간단히 강의가 끝나면 조별로 알아서 해부를 시작한다. 한 조에 4~5명밖에 없어서 다들 열심히 참여하는 분위기였다. 체크리스트에 있는 구조물을 찾기 위해 책을 뒤져가며 열정적으로 해부를 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내가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일본어로 된 책을 찾아서 번역기를 돌려 영어로 가르쳐주기도 하고, 교수님을 불러서 여쭤봐 주기도 하였다. 역으로 나한테 물어보면 나도 한국 친구들, 선배들과 의논하여 가르쳐주었다.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 해부를 하는 모습을 보며, 작년에 시간 때우기에 급급했던 나의 해부학 실습 시간이 부끄러웠고 아쉬웠다.
우리 학교의 해부 실습과 또 다른 점은 큐슈 의대에서는 카데바를 다 분리하여 해부를 한다는 점이었다. 사지를 다 자르고 머리도 몸통에서 잘라낸 상태였다. 처음에는 너무 충격적이고 잔인하다고 느꼈지만 이렇게 하니 책에 있는 그대로 단면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나는 머리 쪽을 해부하였는데 코의 안쪽면을 해부하면서 상상 속에만 있던 구조물들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내가 보고 싶었던 소화기, 순환기, 호흡기 계통의 내장들을 다 꺼내서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었고 일본 교수님들께 여쭤보면서 궁금증을 해결하였다. 해부 실습이 많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와 다른 환경에서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던 내 자신을 많이 반성하고 왔다는 점에서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해부학 실습이 없는 어느 날 우리는 담당 교수님인 Professor Jinno 교수님을 따라서 랩 투어를 하였다. 먼저, 교수님의 랩에서 현재 연구 중이신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장기간에 걸친 연구 끝에 조금씩 성과가 보이고 있다고 하셨다. 치매에 대한 연구였는데 임상에 쓰이면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피피티 프레젠테이션으로 강의를 듣고 본격적으로 랩을 보여주셨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성능 좋은 현미경부터 해서 쥐를 이용한 실험을 하기 위한 다양한 도구들, 그리고 유전공학을 적용한 실험 기구 등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각 방에서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의사, 과학자 분들께 설명도 들었다. 한국보다 연구실이 많은 것 같았고 기구도 많이 구비되어 있었다. 큐슈 의대도 우리 학교처럼 병원 옆에 의과대학 건물이 있다. 하지만 그 규모가 훨씬 크고 연구실이 굉장히 많았다. 우리는 랩 투어가 끝난 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일본이 노벨상을 타는 데는 이렇게 탄탄한 연구 환경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이다. 나는 의사가 임상의학을 하면서도 연구를 꾸준히 해야 의학이 발전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잘 구축된 일본의 연구 환경이 매우 부러웠다.
이렇게 해부 실습도, 연구실 구경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일본 친구들과의 시간이었다. 일본은 우리와 다르게 아직 학기 중이라서 다들 바쁘고 정신없을 것 같아서 크게 기대를 안 했는데 생각보다 정말 따뜻하게 우리를 대해주었고 시간을 내서 많은 프로그램들을 함께 하였다. 처음에 웰컴 파티를 준비해 주었는데 교수님들까지 참가한 파티였다. 일본 친구들이 준비한 퀴즈를 풀며 조원들끼리 친해졌고 학교생활 얘기, 나라 얘기를 하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의대생이라는 이유만으로 통하는 이야기가 많다는 점이 참 신기했다. 이후에도 텐진에서 레스토랑을 예약해 근사한 저녁을 먹기도 하고, 이자까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의 초대를 받아 같이 일본 술을 맛보기도 했다. 일본 전통 게임인 카르마 대회에 출전하는 친구가 있어서 단체로 다자이후로 응원을 가기도 했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한국 친구들과 놀 때처럼 편하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Hikari 라는 여학생의 초대를 받아 그 친구의 집에 가서 한국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떡볶이와 김치볶음밥을 해주었는데 따뜻한 코타츠에서 일본인 친구들과 한국 음식을 먹으니 색다른 기분이었다.
마지막 날 페어웰파티가 있었는데 Yuki라는 친구와 깊은 대화를 나누며 많은 것을 느꼈다. 한국과 일본의 의대 시스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비교해 보기도 하고 한일 관계에 대해, 그리고 현재 화두가 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서로 개방적인 사고를 갖고 토의해 보기도 하였다. 민감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그 친구가 말했듯이 우리는 정치를 하는 사람도, 나라의 이익을 계산해야 하는 사람도 아닌 순수한 학생이기에 누구보다 진솔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나를 통해 한국에 대해 궁금해졌고 그 어느 때보다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하였다. 나 또한 이번 경험을 통해, 그리고 Yuki와의 대화를 통해 일본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다음에는 일본어를 익혀 와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가고 싶다.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시작한 이번 해부 실습 교환학생은 결과적으로 나에게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고 자산이 되었다. 다시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해부 실습도 좋은 환경에서 한 번 더 할 수 있었고, 의사 과학자로서의 미래를 꿈꾸게 해준 일본의 연구 인프라도 직접 경험하였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와 함께하며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준 일본 의대생 친구들도 생겼다. 2주간 보낸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이번 실습을 통해 배운 것들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올 한 해도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더불어 세계적인 무대에서 소통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큰 꿈을 갖고 그 꿈을 이루어 가는 의사가 될 것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