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e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관리자access_time 2018.08.02 17:24visibility 347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건강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남에게 줄 수 있는 의사라는 직업을 선망해왔다. 감사하게도 내 꿈을 이루기 위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부모님이 계셨고, 운이 좋게도 내 노력을 배신하지 않을 정도의 재능도 내겐 있었던 것 같다. 길고 긴 입시가 끝나고 의과대학 입학을 통해 오랜 꿈에 한 걸음 가까워졌다. 작년의 난 입시에서의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고, 해외 의료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지는 새내기 의대생이었던 나의 허영심에 안성맞춤이었다. 지체 없이 지원 서류를 보냈지만 이태석 기념 사업회 교수님들의 안목에 보기 좋게 떨어졌다. 이후 학교생활을 하면서 내가 어렸을 때 의료직을 선망해왔던 이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1년이라는 기간 동안 ‘내가 누려왔던 것에 대해 감사하고, 받은 만큼 베푼다’는 내가 남을 위해 봉사를 하고 싶어 하는 동기를 확실히 했다. 올해 다시 해외 의료 봉사에 지원할 기회가 왔을 땐 조금 더 신중하고 솔직하게 지원 서류를 작성했고, 선발되었다는 공지를 받은 뒤엔 1년의 학교생활이 내 자신을 조금 더 성숙시켰다고 느꼈다. 그렇게 타지로 간다는 부모님의 걱정과 동기들의 축하를 등에 업고 미얀마로 향하게 되었다.
미얀마에 도착한 이후 봉사 활동은 내가 그 동안 국내에서 경험했었던 병원 봉사활동과는 사뭇 달랐다. 환자들이 끊임없이 줄을 섰고, 교수님들은 점심을 드시는 1시간을 제외하고 쉼 없이 말이 통하지 않는 환자를 진료했다. 오전 일찍 시작한 진료가 오후 5시를 전후로 끝이 나면 너무 피곤해서 숙소로 향하는 버스에서부터 잠이 들기 일쑤였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즐거움 역시 있었다. 내게 가장 의미가 있었던 순간은 봉사 둘째날 오전 진료 시간에 찾아왔다. 봉사 단원 중 내가 배움의 시간이 제일 짧았기에 의료 지식의 부재는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예상과 실재는 언제나 다르다. 둘째 날, 환자의 혈압이 비정상적으로 높으니 다시 재봐야겠다는 내과 교수님의 말씀은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예과 2학년생에게 무력감을 주었다. 물론 이순희 내과 교수님은 할 줄 없는 게 없는 학생을 다정하게 웃으면서 이해해주셨다:) 그러나 미얀마에 가서 내가 누려왔던 것들을 보답해야겠다는 거창한 포부를 가지고 있던 내게 무지에서 비롯된 그 낯선 무력감은 쉽게 떨쳐내기 힘들었다. 둘째 날 일정이 끝난 뒤부터 모든 봉사 일정이 끝날 때까지 그 순간을 끊임없이 반추해 보았다. 그제야 내가 무엇을 보답해야겠다 혹은 무언가를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거만한 생각인지 알 수 있었고, 주위를 좀 더 겸손한 시선으로 둘러볼 수 있었다. 목과 어깨에 파스를 붙이고 환자를 진료하는 교수님들과, 사람이 북적북적한 더운 로비에서 땀을 흘리면서 노력하시는 선생님들이 보였다. 그리고 내가 있었다.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씀’, 국어사전에 실린 ‘봉사’라는 단어의 정의이다. 내가 미얀마에서 봤던 의료진분들의 모습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땀을 흘리고, 미얀마 병원 환경 개선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던 교수님의 모습은 커다란 감동이었다. 봉사가 모두 끝나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 ‘거기 사람들은 우리가 가지 않아도 충분히 잘 생활해왔다’는 양종필 교수님의 말씀과, ‘다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생각 자체가 거만하다. 함부로 남을 불쌍히 여기지 마라’는 아빠의 가르침이 겹쳐 떠오른다. 미얀마 봉사는 내가 잊고 있던 것을 상기시켜주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내가 미얀마에서 느낀 것을 절대 잊지 않고, 항상 명심하여야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항상 나를 응원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며, 이번 해외 봉사 활동 기간 내내 나를 걱정했던 우리 부모님께, ‘엄마아빠, 그동안 엄마아빠가 주셨던 사랑을 그 나라 사람들과 조금 나누고 왔어요. 나를 믿어줘서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