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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수에서의 2주간의 경험 큐슈의대 교환학샌 해부학 실습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관리자 2017.05.15 17:57 207

"이번 해부실습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면접을 보신 교수님께서 하신 질문이다. 너무나도 진부하고 예상 가능한 질문이었고, 이에 대해 어느 정도의 대답도 미리 생각해 놓은 상태였다. '예전에 배운 해부학을 더욱 심도 있게 공부하고, 일본의 문화를 체험하며,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넓은 시야를 가지고 싶다고 말해야겠다'. 하지만 뭔가 찜찜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뭔가 더욱 절실히 떠날 만한 계기가 있었던 것이었을까. 이때까지만 해도 내 생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해소될 줄은 몰랐었다.

*일본은?

처음 가보는 일본은 참으로 흥미로운 곳이었다. 일단 도시의 거리 사이사이로 너무나도 많은 절과 신사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도심 속에 위치한 여러 공원들의 규모에 다시 놀랐다. 한 공원의 경우 보행자도로와 자전거도로가 울타리로 분리되어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더욱 편하게 산책을 할 수 있었다. 공원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너무나도 평화로웠고 여유가 느껴졌다. 큐슈의 야경은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다소 차분하고 배경과 은은하게 어우러져 뭔가 도회적인 느낌을 선사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의 공중도덕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신호에 걸릴 때마다 시동을 끄는 버스. 사진을 찍으려고 거리 하나를 통째로 전세 냈을 때에도 먼저 지나가지 않고 사진을 찍는 우리를 기다려주셨던 길거리의 할머니. 백화점이나 상점에 갈 때마다 활짝 웃으며 고객들을 맞이하는 점원들. 하루는 신호등이 없는 길을 건너려고 하던 찰나에 차가 멀리에서 오기에 차가 지나간 후에 길을 건너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운전수가 속력을 늦추고 웃으면서 나보고 어서 건너라고 손짓을 한다. 멋쩍은 듯이 웃음을 지으면서 기분 좋게 길을 건널 수 있었다. 일본인들 특유의 몸에 베인 듯 한 예의범절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해부는?

 

해부하면서 생전 처음으로 lumbar vertebra, sacrum, symphysis pubis를 세로로 톱질하고 chisel로 쪼개느라 많은 힘을 썼던 기억이 가장 인상 깊게 남는다. 얼굴의 근육을 관찰하기 위해 mandible을 조금씩 쪼개면서도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한국에서와 달리 일본에서는 팔다리와 몸통을 조각조각내서 관찰한다. 덕분에 단면, 관절, 인대 등을 상세하게 볼 수 있었고, 발목이 돌아가는 양상과 원리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해부를 진행하고 카데바를 정리하는 것 또한 우리와 사뭇 달랐다. 끝나는 시간과 관찰하는 구조물들은 조마다 다양했다. 관찰한 구조물들의 리스트가 있어 구조물을 확인하면서 체크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각 학생마다 체크리스트가 달랐다. 해부가 끝난 후의 뒷정리는 카데바를 헝겊으로 덮고 위에 에탄올을 국자로 뿌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덕분에 포르말린 냄새가 독하게 나지 않았고, 해부 중간에 소독약이 손목에 묻었음에도 불구하고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 않았다.

*여행의 묘미? (해부실습도 여행의 연장선으로 생각한다면)

 

여행의 본질은 '일상으로부터의 탈피'가 아닌가 싶다. 일과 공부에 지쳤을 때, 평소와 다른 새로운 것을 맛보고 즐기고 싶을 때. 하루하루가 지겨워졌을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 영화 포레스트검프에서 포레스트의 어머니는 포레스트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 You never know what you're going to get."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겪고 느끼고 배운 모든 것들은 인생을 권태로움이 아닌 하나의 초콜릿 상자로 만들어주며, 고로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당신의 삶과 나의 삶은 다른 것이며, 같은 여행을 가더라도 경험하는 것, 깨닫는 것 또한 사람마다 다양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이번 여행을 갔을 때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점은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삶은 보기보다 달콤하고 아름답다는 사실, 내 자신의 적당한 균형 유지의 중요성, 등등. 당신은 왜 여행을 떠나는가. 왜 떠나야만 하는 것일까. 나에게는 뚜렷한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막상 여행을 떠나면서 그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The use of traveling is to regulate imagination by reality, and instead of thinking how things may be, to see them as they are." - Samuel Joh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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