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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 의과대학 해부학실습 수기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관리자 2018.08.17 13:56 240

 

본과 1학년을 마치고 겨울방학 중 1월 15일부터 1월 25일까지 총 10박 11일의 기간 동안 후쿠오카에 위치한 큐슈의대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왔다. 어쩌면 여느 방학과 다르지 않을 수 있었던 2018년 1월의 열흘은 내게 잊혀지지 못할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체험기를 쓸 수 있게 된 이 기회를 빌려 이번 큐슈 해부 실습에 가기 전의 준비, 큐슈대학과 후쿠오카 시내에서의 체험,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난 후의 감상까지 정리를 해보려 한다. 


해부학 실습 모집 공고
사실 나는 이 공고를 올해 처음 본 것이 아니었다. 예과 2학년이 끝났을 무렵에도 이 공고를 본 적이 있다. 사실, 본 적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보자마자 가고 싶어서 안달이었기 때문에 잊을 수가 없었다. 해부학 과정이 다 끝나갈 무렵 나는 아쉬움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 학기 내내 해부학 진도를 따라가기 급급해 해부를 하면서도 다 넣지 못하는 느낌이었고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한 번만이라도 더 해부실에 들어가서 내가 구조물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없겠지…’ 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이 공고를 보았기에 가고 싶다는 마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대상은 본과 1, 2학년을 마친 학생이 대상이었기에 당시 나는 1년간 학점과 일본어를 적어도 기본 수준은 만들어 놓아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름의 준비를 거친 결과, 올해에 기다리던 모집에서 당당히 선발될 수 있었다.


큐슈 의과대학 방문
후쿠오카 공항에 내린 우리는 교수님들과 함께 호텔로 이동했다. 짐을 잠시 풀고 요시노야라는 식당에서 규동을 먹은 후 호텔로 모였다. 최석진 교수님께서 간단한 간식을 사주셔 함께 먹으며 교수님께서 전달해주시는 주의사항이나 알림 사항 등을 숙지했다. 우리의 실습 일정, 실습 중인 파트, 교통편 등을 전해 들었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나는 건우라는 친구와 룸메이트였는데, 서로 약간의 걱정이 있었다. 일본어가 유창하지 않은데 내일은 처음 인사를 하는 것인데 소개는 일본어로 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걱정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남들이 자고 있는 동안 부족한 일본어 실력과 구글 번역기와 네이버 번역기, 그리고 인터넷 일본어 사전 등을 활용해 몇 줄의 문장을 겨우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다음 날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다음 날 교수님들과 함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큐슈 의과대학까지 함께 출발했다. 가서는 석대현 교수님의 유창한 일본어 실력으로 Dr. Yoshida 교수님께 인사를 드리고 우리를 소개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 한국의 교수님들은 떠나셨고, 우리는 Dr. Yoshida 교수님과 실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28개의 조와 넓은 실습실도 놀라웠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해부 실습실 특유의 포르말린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놀라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실습실 가운데에 나란히 섰고, Dr. Yoshida께서는 우리를 일본 학생들에게 이리저리 설명을 해주시는 듯 했다. 그 말을 우리는 어차피 알아듣기 힘들었기 때문에 나와 건우는 어제 밤에 외운 문장만 속으로 죽어라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Dr. Yoshida께서 우리에게 소개하라고 마이크를 주셨고, 우리가 소개를 끝낼 때마다 일본 친구들은 다행히 열렬한 환호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성공적으로 소개를 마친 후 우리는 각자 배정된 조로 이동했고, 일본에서의 해부학 실습이 시작되었다.

 

해부 실습
나는 11조에서 해부 실습을 했다. 우리 조원들은 아키코, 토마모사, 하루키, 히토미, 카즈히코 총 5명이었다. 히토미라는 친구가 주로 통역을 해주었고, 다른 사람들도 내가 물어볼 때마다 친절히 답해주려 노력하는 모습이 늘 나로 하여금 고맙게 느끼게 해주었다. 큐슈 대학에서 실습을 하면서 우리 학교의 해부 실습과 다른 점을 몇 가지 발견했는데, 그 중 하나가 각 조가 두 팀으로 나눠서 진도를 진행한다는 점이었다. 히토미와 하루키가 얼굴 부분을 한다면 카즈히코와 아키코는 발 부분을 맡고 있었다. 다음 날 교대하는 것도 아니라 계속 자신의 부분만 하길래 하루는 각자 다른 부분을 하면 안 한 부분을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하루키는 각자의 파트를 다 한 뒤 마지막에 서로에게 설명을 해주는 식으로 진행을 한다고 해주었다.


또 조금 달랐던 것은 세세하게 해부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경우 시간이 촉박하기도 하니 손끝과 발끝과 같이 아주 세세한 부분은 넘어가는 경향이 있는데, 큐슈의 경우 아주 섬세한 해부를 하는 느낌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각자가 나눠서 진도를 나가다 보니 비교적 많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질문이 적은 것이 가장 큰 점이었다. 나쁜 의미로 적었다는 것이 아니다. 큐슈 대학의 친구들은 해부 지침과도 같은 책 한 권과 자신만을 믿고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해부를 진행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예과 2학년 때를 생각해보면 교수님들은 우리의 뒷바라지를 해주신다고 이 조 저 조를 바쁘게 돌아다니셨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곳의 경우 각자가 최대한 머리를 싸매며 책을 바탕으로 진행해보고, 아주 감조차 안 잡히고 힘들 때가 되어서야 조언을 구하러 가는 것을 보고 조금 더 자기주도적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하고 느끼게 되었다.

 

큐슈 의대 학생들과의 뒷풀이
우리는 열흘 중에 3일 정도 일본 학생들과 저녁에 같이 식사를 했던 것 같다. 아마도 해부 첫 날과 둘째 날, 그리고 마지막 날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 블로그에만 올라오는 식당이 아닌 현지인들이 즐기는 식당에서 일본인 친구들과 식사를 하고 술도 함께 마시는 것은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
첫 번째에는 모츠나베 집을 갔다. 모츠나베란 우리나라로 치면 곱창전골에 해당하는 격이다. 생각보다 많은 수의 학생이 와주어서 스무 명이 넘는 자리가 필요했고, 그러다 보니 정해진 식당이었다. 4층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서로를 소개하며 어색함을 풀어갔다. 전골이 조금씩 끓기 시작할 때쯤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거의 다 외웠고, 다 먹은 후엔 3년이나 함께한 듯한 친밀감이 생겨났다.

두 번째에는 야끼니꾸집을 갔다. 야끼니꾸란 불에 구운 소고기라는 뜻으로, 일종의 주물럭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처음 만날 때 동아리 활동으로 시간이 되지 않아서 못 온 친구들도 와주어서 더욱 넓고 깊게 친해질 수 있었다. 이제 어색함은 어제의 이야기가 되었고, 일본어와 영어가 뒤죽박죽임에도 서로의 대화는 더 화목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우리가 습관적으로 고기가 구워질 때 즈음 각자의 접시에 집게로 고기를 덜어주었는데, 그럴 때마다 “아리가또” 하며 고마움을 표시해주어 우리도 더 기뻐지곤 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우리가 입국하기 전날 마지막 수업이 끝난 후였다. 오키나와 전문 식당을 갔는데, 본토와의 거리가 꽤 멀어서인지 음식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졌다. 오키나와의 경우 대만에 오히려 가까울 정도로 먼 섬인데, 그러다 보니 본토와는 다르고도 특별한 음식이 많이 발달한 것 같았다. 자색고구마로 만든 고로케를 먹으며 서로 맛있다며 “우마이!”를 외치고 있는 우리 모습은 태어나서 올해 처음 만난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의 친밀함을 엿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오늘 밤이면 “사요나라(작별인사)”라고 말하고 멀어져야만 했기에 아쉬움을 숨기기는 어려웠다.

 

맛집 여행
해부 실습을 열심히 하고 일본 친구들을 사귄 것만이 이번 교환학생 기간의 전부가 아니었다. 주말과 같이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라던가 일본 친구들이 동아리로 바쁜 날이면 우리는 맛집 도전에 나섰다. 한국에서 유명한 식당은 물론 일본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곳도 많이 찾아 다녔다. 뒷풀이에서 내가 일본 친구들과 친해져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식당을 알아왔고, 일본어가 능숙한 세정이가 주문을 주로 했으며, 사진 작가인 명지가 우리의 맛집 탐방을 더욱 아름답게 수놓았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본 현지의 친구들이 추천해준 라멘 집이었다. 나는 라멘을 좋아하는 편인데, 우리나라에는 이치란 라멘과 같은 체인점이 굉장히 잘 알려져있다. 하지만 ‘키시’와 ‘노무’라는 친구가 소개해준 우나리 라멘과 멘야 카네토라, 잇신푸란 다이묘 혼텐과 같은 곳의 라멘은 세상에서 먹어보지 못한 맛과 향이었다. 하나 같이 특색이 있었고,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맛이 어떤 맛인지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학생 식당에서의 카레를 비롯해 우리가 돌아다니면서 먹은 음식은 매우 다양하고 하나하나 잊을 수가 없다. 규카츠의 육즙과 바삭함의 조화, 참치 대뱃살의 기름진 부드러움, 페이스북으로만 전해지던 환상적인 멘타이코 오므라이스, 일본 밤거리의 야타이에서 접했던 야끼멘타이코 등 모든 음식이 그 주변을 떠올리게 해주고 후쿠오카에서의 경험을 새록새록 떠올려준다. 이 모든 사진을 찍기 위해 수고해줬던 명지에게는 한 번 더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온천 여행
음식도 유명한 일본이지만, 일본이라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온천이다. 룸메이트였던 건우와 나는 온천도 자주 즐겼다. 나는 열흘 간 3번, 건우는 4번을 갔는데, 두 사람 모두 시간만 더 있었다면 더 가고 싶은 눈치였다. 나미하노유 온천과 텐진 유노하나로 갔었는데, 두 곳 모두 걷기에는 거리가 상당히 되었지만 남자 둘이서 걷기에 무리는 아니었다. 한 시간 정도 걸어 약간의 추위 속에서 약간 땀을 흘린 상태로 온천을 들어가면 그만한 낙원이 없었던 것 같다.
온천에서 서로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는데, 비단 큐슈의대만이 아니라 일본의 의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일본 친구들에 의하면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과 선택이 자유롭고 인턴과 레지던트 수련도 훨씬 체계적이라고 한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성형외과와 피부과, 안과 등에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집중되는 경향이 심하다. 온천욕을 즐기다보니 이런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서도 서로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국에 돌아오며

총 10박의 해부학 실습과 후쿠오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가볍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무겁다고도 할 수 없었다. 떠나기에는 친구들과 정도 많이 들었고 더 가보고 싶은 곳도 있어 시원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어쩌면 여느 해와 다를 것이 없을 수 있었던 나의 1월은 아주 운이 좋게도 전혀 다른 환경에서 다양한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많은 친구들과 친밀하게 잘 지냈다는 점에서 뿌듯함과 상쾌함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발걸음이 무겁지도 않았던 것 같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곧 개강을 하고 시험에 치이며 이 때의 감동이 조금씩 희미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보냈던 시간은 변하지 않는 것이고, 이 큐슈 의과대학과 후쿠오카에서의 경험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가끔 이 수기를 보고 사진첩의 사진을 보며 이 때와 이 곳, 그리고 이 친구들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만,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깨달았고 이 경험을 꼭 추천해주고 싶음에도 그 모든 것을 원하는 만큼 전하지 못하는 나의 글솜씨가 늘 아쉽다. 하지만 이렇게 부족한 나를 믿고 이 곳에 보내주신 학장님과 최석진 교수님, 그리고 학교 관계자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새로운 환경에는 늘 도전할 것이고, 그런 도전들이 이번과 같이 귀중한 경험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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